[미디어스=이정희] EBS <다큐프라임>은 늘 시대를 정의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담론을 다큐로 만들어왔다. '인류세'라든가 '문해력' 등 이제는 익숙한 사회문화 용어들을 본격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도 EBS <다큐프라임>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2022년을 시작하며 EBS <다큐프라임>이 짚어보고자 한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권력'이다.

1월 24일부터 26일까지 EBS <다큐프라임>은 ‘강제혁신’ 편은 1부 권력의지, 2부 경쟁하는 권력, 3부 혁신의 조건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권력'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권력이었을까?

코로나로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절, 이제는 화상 회의 등의 용어가 더는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출몰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이디어'만 가지고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다큐는 단언한다. 아이디어는 쉽게 퍼진다. 하지만 '권력'이 이를 담보해내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배우는 혁신

진정한 혁신은 권력 관계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주장, 그를 위해 <다큐프라임>은 '화약 혁명'의 역사를 소환한다.

1516년 이슬람 세계의 대표적인 두 세력 오스만 제국과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다비크 초원에서 격돌했다. 고도로 정예화된 군사 중심의 맘루크 8만 군대, 그에 반해 6만 5천의 오스만 제국은 보병 중심이었다. 용맹한 기병 중심의 맘루크 군대는 거침없이 오스만의 군대를 제압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훈련이 잘된 정예 부대라 해도 오스만의 비밀 병기 '대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거기에 화승총도 등장했다.

이미 유럽에선 대포와 화승총을 중심으로 한 전쟁의 기술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곧 뛰어난 기병이자 기사였던 맘루크의 주력군은 이 새로운 전쟁 무기의 도래를 탐탁지 않게 여겼고, 이는 결국 왕조의 몰락을 자초하는 결과가 되었다.

'화승총', 왜가 가지고 온 무기로 인해 처절한 대가를 치렀던 조선의 임진왜란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화약 혁명'의 예시는 절묘하다. 그저 우리와 일본의 차이만이 아니다. 실크로드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이전 유럽은 분명 아시아의 문물에 목말라 했던 것처럼 뒤처진 문명을 지닌 대륙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무엇이 아시아와 유럽의 문명을 갈랐을까?

<다큐프라임>은 그 분기점을 '화약 혁명'으로 삼는다. 3부 혁신의 조건을 여는 건 미 스탠포드 대학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윌리엄 바넷과 제프리 페퍼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혁신과 리더의 관계를 풀어낸다.

유럽이 아시아와 운명을 달리하게 된 계기 화약 혁명, 그를 설명하기 위해 아놀드 토인비가 소환된다.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문명 흥망의 열쇠를 도전과 응전이란 키워드로 풀어낸다. 즉 문제를 깨달은 즉시 대응하는 것이 문명 생존과 번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15~6세기 유럽은 늘 전쟁 중이었다. 그래서 적의 군사력에 대한 대응이 곧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르던 시기였기에 군사적 혁신이 강제됐고, 이에 각 국가는 서로 기술 개발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청이 들어선 이후 정권이 안정되었다. 몽골도 티벳도 신장 지역도 다 정리되었다. 최고의 강대국이 된 청은 더는 전쟁에 투자할 일이 없었다. 주변 유목민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기마 궁수와 기병을 키우면 됐다. 중국의 평화 체제 우산 아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16~7세기 임진왜란과 호란을 겪은 후 평화적 시기가 지속되었다. 일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시아가 평화를 누리던 시기, 유럽은 계속 전쟁 중이었다.

전쟁은 ‘파괴’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란 긴장 상태가 혁신과 발전의 계기가 된다. 흔히 아시아가 유럽에 비해 뒤처진 것을 과학에 대한 반감이나 낙후된 문화에서 이유를 찾지만 <다큐프라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화약을 개발한 건 중국이었다. 그런데 유럽이 혁신이 강제된 시기에 아시아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다큐는 말한다.

작은 국가들이 인접해 있던 유럽은 이웃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었으며 그만큼 최신 기술이 잘 확산되었다. 군인과 선원과 발명가들이 쉽게 오갈 수 있었다. 프랑스가 18세기 스위스의 대포 제조자를 고용하여 화기를 제조하는 식이었다. 서로의 기술 개발에 자극을 받은 유럽은 자국의 혁신된 결과를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썼다.

또한 <다큐프라임>은 같은 아시아국이면서도 발 빠르게 화약 혁명에 발맞춘 일본의 사례를 든다. 청과 일본은 서구 열강과 부딪치며 화약 혁명의 시대에 눈을 뜬다. 그런데, 청의 선진 세력은 '양무운동' 등을 일으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여전히 구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 16세기 센코쿠 전국 시대 이래 유럽처럼 계속된 전쟁을 치러왔기에 화약 혁명에 대한 절실함이 컸다. 또한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던 유신 세력은 '막부'라는 구체제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메이지 유신과 양무운동은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혁신의 주체는 권력

이처럼 다큐는 이미 알려진 세계 역사를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사람들은 기존의 신념대로 살고 행동하려 한다. 또한 혁신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성공적인 혁신’이 기억될 뿐이다. 특히나 권력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권력을 갖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혁신으로 나아가는 것은 '권력'의 몫이라고 다큐는 말한다. 역사로부터 시작된 혁신은 이제 현대로 와서 기업 혁신으로 이어진다. 그 사례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포스코이다. 6.25 이후 국가 재건에 앞장선 포스코.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집약적 산업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기존의 방식 대신 첨단기술산업을 꿈꾸며 '파이넥스 공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철강 생산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화약 혁명과 인터넷, 스마트폰은 다르지 않다고 다큐는 말한다. 화약 혁명이 유럽을 제국 열강으로 만들게 될지 몰랐듯,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문명인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개발이 당시에는 애플 등을 일류 기업으로 만들어 줄 거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강제 혁신', 역사와 기업의 발전은 변화의 물결 앞에 주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걸 이끌어 나가는 건 결국 '권력 의지'에 달렸다고 <다큐프라임>은 강조한다. 다가올 선거의 계절, 우리의 선택을 받을 '혁신'의 리더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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