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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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 스포츠 경기나 선거라는 정치 이벤트를 출격, 육탄전, 비밀 병기 등 전쟁용어를 동원해 주목도를 높이는 것에 반감이 컸다. 정정당당하게 자웅을 겨루면 되지 전투를 치르는 양 공격성을 고취시킬 것까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종종 나도 모르게 그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시민권을 얻은 1987년 이래 중요하지 않은 선거는 없었지만 내년 총선은 역사의 분수령이 될,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선거가 될 거라 생각하니 절로 결전을 앞둔 심정이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무도한 검찰권 남용을 단죄한 지난 총선에서 헌법 개정을 빼고 뭐든 할 수 있는 거대여당을 만들어준 촛불시민들이 이번에는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검찰개혁, 언론개혁은 고사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촛불정부와 민주당이 검찰세력에게 권력을 내주고 1년 만에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자신의 참여가 역사 발전에 기여한다는 효능감을 잃은 지 오래다. 정권을 빼앗긴 데에 대한 처절한 반성은커녕 거대야당으로서의 책무를 잊은 채 각자 주판알 튕기기 바쁜 민주당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검찰과 당내 반개혁 세력에 막혀 특유의 돌파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재명 당 대표를 지켜보는 심사도 편치 않다. 수족관 물을 떠먹는 저질 퍼포먼스를 비롯해 매일매일 국민을 향해 린치를 가하는 저들이나 국민과 같은 수위로 분노하는 민주당 인사들이나 한숨 나오기는 매한가지다.

갈 곳 잃은 시민들 분노, 그러모아줄 그릇은 어디 있나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며 개혁의 견인차라는 정치 효능감으로, 밤잠 줄여가며 아스팔트에 나가도 지칠 줄 모르던 시민들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연설문을 대신 써준 것만으로도 이게 나라냐 목 터지게 외쳤던 국민들이 대통령이라는 자가 미래세대의 생명을 압살하는 방사성 물질 해양투기에 협력하고 전임 대통령을 반국가세력이라 칭하는 이 얼척없는 현실에도 이게 나라냐 하늘을 찌르는 함성이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몬스터주식회사’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는 몬스터들이 아이들의 비명소리로 충전한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어쩌면 지금 시민들의 갈 곳 잃은 분노를 그러모아줄 그릇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석열 정부의 전횡이 극에 달할수록 총선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이 국힘당이 잘 해서가 아니었듯 이번 총선에서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반감으로 집권당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검찰 캐비닛의 위력이 작동하고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협조하는 언론 환경 등 최악의 조건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아무리 개차반이어도 희망을 주는 세력이나 대안이 보이지 않으면 분노는 절망이 되고 투표장으로 가는 대신 각자 소확행을 즐기는 것으로 생존전략을 수정할 가능성도 있다. 이게 바로 저들이 가장 바라는 바이자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혐오이자 정치허무주의다.

말해 뭣하나, 내 먹고 살기도 벅찬데 광장에 나가보니 뭣하나, 역대급으로 밀어줬는데 그 이상인들 뭣하나… 상당히 많은 이들이 물을 마셔도 체기를 느낀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부아가 끓어올라 아예 뉴스를 열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소리라도 지르면 한결 낫겠건만 매주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이 아니고서야 그런 자리는 언감생심이요, 기존 친구관계 · 인간관계도 다 끊어져 고립무원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힘있게 개혁하라고 만들어준 거대 야당은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하는 이들에게 “뭐라도 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다. 촛불시민들이 분노를 쏟아내고 희망으로 전환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지 못한다면 시민사회의 동력 상실을 막지 못한 채 잃어버린 n년을 만들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은 것도 그런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선택으로 육탄전을 펴야 하는 대신 검찰과 당내 비토세력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그럼 이제 그는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돌파력을 갖춘 공격수가 될 수 있을까?

촛불혁명의 독버섯이 촛불 압살하는 모순의 극치

세상의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 유명한 ‘모순’이야기는 한비자 난일편과 난세편에 나오는 고사다. 어떤 명제와 그 부정이 동시에 성립됨을 주장하는 논리적 오류로 많이 쓰이지만 실은 덕으로 태평성대를 일구었다는 유가의 덕치주의를 비판하며 예로 든 이야기다. 순임금이 구악(舊惡)을 없앴다는 것은 곧 요임금의 실책이 있었다는 뜻이니 둘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자신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를 배반하고 상대당 대통령이 되어 자신을 임명한 전임 대통령을 반국가세력이라 매도하는 것만큼 역설과 모순이 또 있을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서 크고 작은 독버섯이 자라 촛불을 압살하는 것만큼 모순됨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모순은 정반합의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뛰어난 창과 방패를 동시에 갖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창을 든 자는 공격태세를 갖추므로 주도권을 쥔 자요, 방패를 든 자는 예상되는 공격지점을 예측해 힘을 분배해야 하니 근본적으로 방어자일 수밖에 없다. 전장의 주도권은 당연히 창을 든 자가 갖게 마련이다. 그럼 창과 방패를 다 갖는다면? 나는 이재명 대표가 창과 방패를 동시에 장착해야 특유의 저돌적 전투력을 갖춘 공격수가 되어 저들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수렁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창과 방패는 조국과 추미애다.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 중 첫 번째 과업으로 네메아의 사자를 쓰러뜨려야 했다. 어떤 창과 칼로도 뚫지 못하는 가죽 탓에 누구도 죽이지 못한 네메아의 사자는 사람과 동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헤라클레스는 30일 동안 사자와 전투를 치른 끝에 사자가 지쳐 쓰러진 틈을 타 목 졸라 죽인 후 가죽만큼이나 날카로웠던 사자 발톱을 이용해 가죽을 잘라냈다. 헤라클레스가 목에 걸친 네메아의 사자 가죽은 세상 어떤 무기도 뚫지 못하는 최고의 방패가 되었다. 가장 좋은 무기는 상대의 약점에서 찾을 수 있고 가장 좋은 방어는 공격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네메아의 사자 죽이고 그 가죽을 취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 대표와 단 한 번도 영수회담을 하지 않았다. 야당을 그림자 취급하고 링 위에 올라온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 취급하며 싸움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연히 언론에 오르내릴 기회도 없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치 고관여층을 제외한 국민들에게는 후쿠시마 방사성 폐기물 해양투기에도, 전임 대통령과 거대야당, 촛불시민을 향해 간첩·반국가세력 운운해도 그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 링 위에서 싸울 수 없다면 링 밖에서라도 싸움을 걸어야 한다. 이번 총선은 누가 뭐래도 검사대통령을 위시한 불의한 검찰조직과의 대결이다. 무도한 검폭 집단에 나라를 넘기느냐 최소한의 견제권을 확보하느냐 하는 역사적 분수령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을 상대로 개혁의 칼을 뽑았다가 멸문지화를 당한 조국과 정치적 영어의 몸인 추미애의 등판은 필연이다. 조국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으로서 시스템 개혁을 주도했다면, 추미애는 그 과정에서 공격받고 쓰러진 조국을 대신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권한남용과 불법을 바로잡기 위해 배수진을 치고 들어간 사냥꾼이었다. 이 두 사람은 반개혁 세력들에게 토사구팽 당했지만 진보진영의 녹슬지 않은 창과 방패이며, 170석을 목표로 한다는 반 헌법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게 두려워할 상대이기도 하다.

조국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들에게 강력한 위협이 되는 존재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면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조직을 총동원해 찾아낸 것이 표창장 위조혐의였다. 이것으로 배우자를 감옥에 보내고 딸을 고졸로 만들고 의사면허를 박탈했다. 그럼에도 마른 잎 다시 살아나듯 죽지 않고 살아나 전국을 돌며 북콘서트를 하고, 조민은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유쾌하게 살아간다.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조국과 조민이야말로 진보의 품격이며 존재 자체가 그들의 이성을 잃고 헛발질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다.

존재만으로도 저들에게 위협이 되는 두 사람

그들은 민정수석, 장관, 교수, 의사 그 어떤 것도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 원하는 사회를 위한 수단이었기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나는 조국과 조민이 미워 죽겠는 거다. 조국이 총선에서 주연이든 조연이든 존재하는 것만으로 강력한 방패가 되는 이유다. 추미애의 전투력이야 당대표 시절 촛불시민을 향한 계엄령 음모를 사전에 차단시킨 것과 윤석열을 징계로 몰아간 것만으로도 이미 검증된 바다. 현 시점에서 추미애만큼 정치 경험이 풍부하며 강단 있고 지략을 갖춘 장수는 단언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안팎으로 조국을 방패로, 추미애를 창으로 삼아 총선이라는 단기전을 준비하되 가장 영향력 있는 차기 대권 후보에 걸맞게 긴 호흡, 넓은 시야를 제시하여 시민들이 발밑으로 떨군 시선을 다시금 멀리, 높이 들게 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은 윤석열을 향한 분노를 희망으로 일궈내고 민주당과 그 외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검폭국회를 저지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은 민주당이나 이재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외세의 침탈에도, 무도한 군부독재에도, 역사를 되돌리려는 기득권의 음모에도, 번번이 생업을 접고 들고 일어나 자존을 지킨 국민들을 위함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래 최악의 연성쿠데타를 분쇄하는가 실패하는가 역사적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하다.

다시 민주정으로 돌아갈 것인가, 26년 군부독재를 능가하는 검찰파쇼라는 지옥문을 연 죄인으로 남을 것인가, 역사적 기로에 선 우리도 더 현명해지고 더 냉철해져야 한다. 정치인을 사모하는 게 아니라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누가 캐비닛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안희정 · 김경수 · 박원순, 검찰조직이 민주당 대선주자들을 다 날리고도 날리지 못한 게 누구인가. 이재명은 형수 욕설이, 조국은 표창장과 봉사활동 확인서가, 추미애는 아들의 군복무 중 에피소드가 저들이 찾아낸 구우일모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이고 이들이야말로 저들이 쉬 꺼꾸러뜨릴 수 없는 창과 방패임을 방증한다. 이재명 대표는 이들을 무기삼아 기소청 설치, 공수처 강화를 전면에 내건 일전을 치러야 한다.

아직도 조국을 일러 내로남불이라 말하는 자들이 곧 윤석열주의자이며 아직도 추미애를 정치적 야욕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자가 검찰주의자요 기회주의자다. 아직도 이재명의 욕설을 운운하는 자가 있다면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청맹과니다. 이재명 대표가 조국과 추미애를 창과 방패로, 반동을 저지하고 개혁이라는 시대정신에 충실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을 뒷배삼아 좀 더 담대하고 좀 더 선명해져야 모두가 산다. 누구든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정의와 자존의 회복이 곧 민생이라는 시대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내는 이가 더 큰 지도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