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탓일까?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강하고 건실하며 정의심에 불타는 남자주인공들이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월화드라마를 살펴보면 KBS2 <빅맨>의 강지환, MBC <트라이앵글>의 이범수, 김재중, SBS <닥터 이방인>의 이종석이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고, 수목드라마 경쟁에서도 KBS2 <골든크로스>의 김강우, MBC <개과천선>의 김명민,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차승원, 이승기가 맨 앞줄에서 서서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힘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세며, 든든하고 미더운 구석을 보이는 이미지도 여자보다는 남자 쪽에서 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거나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 남자의 넓은 어깨와 가슴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은 이 때문일 테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연약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를 위로하고 심리적으로 조금이나마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 현재 드라마 속 캐릭터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남자주인공들로 포진되어 있다. 그가 시대의 영웅이 된다면 이는 완벽한 대리만족이 될 테다.

남녀간의 절절한 로맨스, 혹은 배신당한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재미도 있고 자극적이기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보장해주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겪은 슬픔을 어루만져 주기에는 무척이나 가벼운 이야기여서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종류의 이야기에 몰입이 될 만큼 여유롭지도 못한 상태다.

그래서 수목드라마도 ‘남자주인공들의 세상 바꾸기’라는 타이틀을 공통 주제로 삼아 열심히 달음박질을 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들의 직업은 검사와 변호사, 형사다. 마음만 먹으면 평범한 직장인보다는 세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애를 쓰면 쓸수록 윗선들의 권력과 압력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비쳐질 테지만.

<골든크로스>에서 강도윤(김강우 분)은 억울하게 죽은 여동생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지만, 결국 그는 상류 클라스이자 사회 범죄집단이기도 한 골든크로스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척결하는 정의의 사도로 거듭날 것이다. 권력에 짓밟힌 한 남자의 복수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악을 찾아내어 그 뿌리를 뽑아내는 영웅의 일대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인 것이다.

<개과천선> 역시 그저 한 사람의 개과천선을 그린 작품으로 봐서는 안 된다. 명예욕과 프라이드로 똘똘 뭉쳤던 김석주(김명민 분)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되면서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다. 내가 바뀌는 것이 곧 세상이 바뀌는 시작임을 일러주는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며 지켜봐야 하는 작품이다.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언뜻 봐서는 사회를 바로 잡으려는 영웅의 일대기와 별 상관이 없는 작품인 듯하다. 작품의 분위기도 코믹한 요소를 앞세워 진중한 수사물의 느낌을 걷어냈다. 그러나 은대구(이승기 분)와 서판석(차승원 분). 두 주인공이 지닌 형사라는 신분은 그 자체로서 사회 부조리 척결과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소 가벼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이 작품 속에도 세상이 이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전반적으로 서려있으며, 이를 남다른 터치로 유쾌하게 풀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고 보니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각각 다른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이승기는 1987년생 올해로 28살이다. <골든크로스>의 김강우는 1978년생으로 37살이며, <개과천선>의 김명민은 1972년생으로 43살이다. 이승기와 김강우, 김명민은 20대, 30대, 40대를 대변하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이며 현재 자신들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나이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은대구는 막 경찰학교를 졸업한 신입 경찰이자 사회 초년생이다. 아직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스러움을 지니고 있으며 성격 또한 둥글지 않고 까칠하다. 20대의 나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뼈아픈 사연을 품고 경찰이 된 그지만 그럼에도 감정표현이 서투른 것을 보면 영락없는 20대 청년이다. 이승기는 꽤나 부드럽게 은대구라는 인물에 자신의 진짜 자아를 이입시키고 있는 중이다.

강도윤은 검사 시보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곧 변호사로 직업을 바꿀 예정이다. 은대구와 같은 처지이지만 그보다는 좀 더 처절하고 절박해 보인다. 무엇보다 맞서 싸워야 할 산이 무척이나 장대하다. 20대보다는 여문, 그러나 능구렁이는 될 수 없는 30대의 패기를 잘 그려내고 있는 김강우다. 그가 지닌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역할을 맡았다. 복수를 향한 울분만큼 에너지 또한 강렬하게 넘쳐흐른다.

김석주는 불혹을 넘겼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는 않을 만큼 기반을 다져 놓은 그다. 그러나 그 유혹을 쥐고 흔들려는 교만이 그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김명민은 40대로 넘어가야만 소화해 낼 수 있는 연기를 김석주를 통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과천선을 하게 되는 남자, 두 가지 색깔을 지닌 캐릭터를 자유로이 그려내는 힘은 40대의 연기 연륜에 기인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인다.

우연찮게 세 작품의 남자주인공들은 제각각 20대와 30대, 40대의 나이로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20대와 30대, 40대의 자화상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 모습을 비교하며 시청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할 듯하다. 막연히 작품의 줄거리에 빠져 들어 이건 재미있고 저건 재미없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각 세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도 드라마를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는 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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