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도 아닌데, 24시간 영업하는 농기계 수리점이 있다. 강관 파이프를 뼈대로 투박하게 지은 영업 공간은 지붕과 양 옆, 뒤편은 함석으로 벽을 쳤지만, 정면은 문을 열어놓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벽 자체가 없다.

충남 예산군고덕면 호음리에 위치한 농기계 전문 수리점인 ‘청화당 공방’. 당진 합덕읍과 5~6㎞정도 떨어진 거리의 큰길 옆에서 수리가 필요한 농기계를 연중무휴 기다리고 있다. 큰사진보기 ▲ 24시간 대문 없는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하는 ‘청화당 공방’ 이상운 대표. 농기계 고장으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채택한 운영방식이다. ⓒ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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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인 이상운(61) 대표는 1988년 ‘중부농기계’라는 상호로 고향에서 문을 연 뒤 37년 동안 전문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예덕초, 고덕중, 합덕농고(합덕제철고 전신)를 졸업한 이 대표는 고등학교 재학 중 농기계 수리 기능사 자격을 취득한 것이 평생 업의 기반이 됐다. 개업 초창기 자동차 수리도 했지만, 지금은 트랙터, 작업기 등의 대형 농기계들을 주로 취급한다.

“사람에게 아호가 있듯이 집에 호를 붙이면 당호가 된다. 가게도 호를 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10여년 전에 상호를 ‘청화당(淸和堂)’으로 개칭하고, 수리점을 ‘공방’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고향에 머물기로 한 데는 형제들 가운데 누군가는 어머니(성영순·90) 곁을 지키고, 농사를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4남 1녀 가운데 셋째인 이 대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둘째 형(이상회)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에 남기로 했다.

“농민들이 농사를 짓다가 농기계가 고장 날 경우 예전엔 먼 거리에 있는 수리센터로 가야 했다”며 “이렇게 농사현장 가까이서 바로 수리할 수 있다면 농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줄 수 있다”는 생각도 그를 고향에 머물게 한 배경 중 하나다.
큰사진보기 ▲ 청화당 공방이 특별한 이유는 24시간 작업장을 개방하기 때문이다. ⓒ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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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점·수리센터라 하지 않고, 상호를 ‘공방’으로 변경한 까닭. 기술과 예술의 차이, 사업가와 장인을 구분하는 그의 설명이 명쾌하다.

“나사 하나를 돌려도 혼이 들어간다면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인 것이고, “돈을 벌 목적으로 영업을 한다면 사업가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과 고통을 해소하려는 사람이라면 장인”이라는 그의 말은 누구나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경험과 성찰이 아니면 힘든 표현이다.

이처럼 그는 장인 정신으로 고장난 기계 볼트 하나 조이는 일에 혼을 담아 오늘도 드라이버와 렌치를 들고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인간관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농기계도 종류별로 수리하는 곳이 세분화 돼 있다. 예전엔 나도 예초기 같은 소형 농기계를 다루긴 했지만, 지금은 상도의상 수리를 맡지 않는다”고 한다. “그분들도 밥 벌어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란다.
큰사진보기 ▲ 얼핏 직원으로 보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농기계 수리를 위해 청화당 공방을 방문한 마을 주민이다. 자가정비는 언제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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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업 종사자들에 대한 의리를 느끼기에 충분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공방 안에 즐비하게 널려 있는 각종 공구, 장비 관리는 어떻게 할까 의문이 든다.

“자가정비는 누구나 언제든지 공방 도구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보다시피 항상 문이 열려있다. 지나가던 차량이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도 되고, 조이고 고쳐야할 일이 있다면 누구라도 와서 자유롭게 이용하면 된다”는 놀라운 설명을 내놓는다.

이는 그의 삶에 녹아 있는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기본자세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돈에 얽매여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군가에게 덕을 베푼다고 그 사람이 바로 돌려주진 않는다”며 “하지만, 그게 돌고 돌아 그들과 연계돼 있는 어떤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철칙이다. 내가 베풀면 돌아온다. 안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마치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듯 말한다.

젊은시절 동양철학 심취…주역·풍수지리 강의도

이쯤 되니 슬슬 이 대표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독학으로 주역, 풍수지리서 등을 섭렵했지만, 한계를 느꼈던지 지난 2001년에 만난 거봉 김혁규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본격적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는 자는 가르쳐야할 의무가 있고, 배우려는 자는 배울 권리가 있다는 말이 있다”며 “내가 알고 터득한 것을 나눈다는 의미로” 매주 수요일마다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홍성군노인종합복지관, 덕산 내포풍수지리연구소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영업장인 ‘청화당’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닫을 문도 없지만)로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농기계 수리가 필요한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공구·장비를 사용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내 준 시 작문 숙제를 미처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기응변으로 시를 읊었던 것이 생애 첫 시였다고 한다. 그 뒤 중학교에 진학해 틈틈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는 그는 2008년 <한내장터>라는 시 작품으로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큰사진보기 ▲ 쓸모없게 된 루마니아제 녹슨 트랙터가 청화당 공방의 상징물이 됐다. 농기계 수리점 ‘청화당 공방’ 이상운 대표는 “농촌 마을의 동상이 됐다”며 트랙터를 각별히 여긴다. ⓒ 황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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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공방 한쪽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낡고 녹슨 트랙터에 눈길이 간다. 사연인즉 루마니아에서 약 50년 전에 들어온 건데, 10년 전까지도 농사현장에 투입됐던 트랙터다. 타이어 골이 완전히 닳아 매끈해져 있을 정도로 임무를 다하고 퇴역한 장성 같다.

남들에겐 그저 고철 덩어리지만, 이 대표는 트랙터를 주제로 시 한편을 남길 만큼 애지중지한다.

‘나는 네가 고물로/동상이 되어서라도/농업발전에 이바지하다/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이름 없는 농기계들에/한 이라도 풀어주길 바라며/세월에 때 묻은 몸뚱이를/오늘도 어루만져 주고 있다’ <낡은 트랙터>

공방은 몇몇 사람들로 분주했다. 물론 농기계를 자가 수리하기 위한 사람들이다. 이 대표는 직원을 두지 않는다. 자가정비를 위해 농기계 수리 삼매경인 마을 주민은 그 순간 공방의 직원이 된다.

또 공방에서 만난 주민들이 마치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이 근방에 이 대표만큼 실력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그는 멈춰 선 농기계를 움직이게 하듯, 그의 사유에 포착된 삶·인간·세상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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