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진보기 ▲ 타자기.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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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대략 이렇게 시작되는 문장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3일 밤낮을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내가 찾는 답이 없었다.’ 참고로 주인공은 대학 교수다. 그때 그 문장을 읽고 사람들은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찾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려고 눈을 감으면 20대의 내가 누워 있는 블랙홀에 빠져든다. 깊고 어두운 고요 속에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다시 눈을 뜬다. 20대로 돌아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면 될 텐데, 나는 왜 자꾸 과거의 나로 돌아가 연민에 빠지는 것일까. 답을 찾고 싶어 브런치 스토리를 뒤졌지만 어디에도 없고 그저 소비되는 글들이 줄지어 숨바꼭질하고 있다.

어떤 것에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반복해 듣고 좋아했던 작가의 오래전 글을 찾아 마음에 담으며 공허함을 채운다. ‘나도 저런 문장을 쓰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지금의 나처럼 위안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간절히 원하지만 재능 없는 열정에 한없이 무너지곤 한다.

‘글 써서 돈을 얼마나 버는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글 쓰면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았는데 겨우 그걸 벌려고 글을 쓰냐며 실망한다. 책을 읽는 사람도 아니고 글이라곤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돈 되는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글이라는 게 돈만 바라보며 쓰는 것도 아닌데 돈과 결부를 시키니 소모전이 되는 것만 같다.

글을 돈과 결부시킨 대화에 기분이 언짢아져 그 길로 ‘글쓰기로 돈 벌기’라는 키워드를 넣어서 검색해봤다. 그러곤 출간제안을 받았다는 인기작가들의 글을 빠짐없이 읽어봤다. 주로 20대, 30대가 쓴 글인데 나이 탓인지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나잇대 작가의 글이 맞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육아, 시댁, 워킹맘, 이혼 이야기라 관심밖이었다. 혹시나 50대 싱글을 검색했더니 화려한 스펙이다. 특별할 것 없이 소박하게 혼자인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글 잔치 속에 내가 찾는 문장이 없는 현실이 풍요 속 빈곤이다. 콘텐츠가 없는 대한민국 평균 여성과는 거리가 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욕망을 찾아 헤메는 과정에서 끓어올랐던 감정이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다 좋은데 깊이가 없어.” 인간의 욕망에 대한 조롱을 담고 있는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 속에 끊임없이 나오는 대사다. 욕망을 쫒던 주인공의 최후가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욕망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주인공이었을까. 아니면 깊이를 강요한 평론가의 욕망이었을까. 오래전 읽은 책인데 내용이 강렬해 이 글을 쓰는 도중 갑자기 튀어나왔다.

“다 좋은데 돈이 안되잖아”라고 말하는 타인의 짧은 한토막에 욕망을 드러내는 나는, 작품의 깊이를 고심하던 소설 속 주인공과 무엇이 다른 걸까. 소설은, 욕망을 경계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조롱한다. 그놈의 깊이가 뭐라고. 전도유망했던 젊은 화가를 절망에 빠트려 세상을 등지게 만들었는지. 타인으로 시작된 주체 없는 욕망에 휘둘리지 말자고 되뇐다.

요즘은 가끔 내 책을 내가 검색한다. 돈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검색창에 검색되어 나오는 책을 보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책제목이 유일한지 유일하게 검색되는데 그래서 더 기분이 좋다.

검색창에 나온 책 루트를 찾아 판매처까지 갔다가 우연히 책에 달린 리뷰를 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삶이 누군가의 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렵니다” “누구나 고유한 마음을 갖고 있다. 중략. 작가는 주변의 미약한 소리들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미약함을 세상에 전달하는 힘을 가진 이 같다”이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글을 찾아 헤매던 지금 그 어떤 유명한 작가의 문장 보다 나를 위로하는 글이었다. 미약하지만 세상에 전달하다 보면 어딘가에 닿아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어떨 땐 누군가 위로받은 그 글에서 또 다른 위로를 받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이 강요한다. 세상은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이 널려있으니 당신만의 이야기를 쓰라고. 이렇듯 뻔한 진리는 늘 돌고 돌아 내게 도착하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보는 과거의 블랙홀은, 현실이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음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글 쓰면 돈을 많이 버는 줄알았다는 그의 질문은 나쁜 의도가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뿐인데 예민하게 반응하며 욕망을 드러냈으니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한 꼴이다.

갑자기 이혼 통보를 받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삼일 밤낮 도서관 책들을 뒤졌던 대학교수의 결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도 몰라 다시 찾아볼 수도 없다. 이야기의 엔딩은 언제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직면한 현실도 가끔은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문장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되고 싶은 삶의 문장은 타인의 욕망에 지배되지 않도록 나는 나를 배려하고 싶다. 그리고 답하기 보다 질문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모든 문제의 답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