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군의 헌법학자이자 현직 변호사인 김진한이<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 지와인 출간>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사실, 대한민국에 법학 개론서는 차고 넘친다. 법 관련 교양서도 제법 많다.

하지만 법의 기원과 연혁, 형법과 민법의 본질과 핵심 구성원리와 차이점,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의 핵심원칙과 차이점, 재판의 속성, 바람직한 법원과 법관의 모습, 검찰개혁의 방향성, 헌법의 본질적 속성과 한계와 가능성, 기본권의 함의와 중요성, 형량과 과잉금지 원칙, 주권자가 법의 규율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기술한 책은 드물다.

열거한 내용들이 거창하고 어려워 보인다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김진한은 거대하고 어려운 법학개념과 주제들을 너무나 쉽고 친절하게 풀어쓰는 재주가 승한 필자이기 때문이다.

법의 시원과 연혁을 찾아서

김진한은법의 시원을 복수에서 찾는다. 단 복수의 주체가 피해자 개인이 아닌 국가라는 점에서 통상 생각하는 복수와는 차별된다. 복수를 국가가 독점하고, 복수가 응보만이 아니라 예방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며, 복수의 종류가 민사와 형사라는 사실은 고대 함무라비 법전부터 현대까지를 관통한다.

김진한이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에서 기술한법의 발전과정을따라가는 여정은 흥미롭다. 김진한은 로마의 12표법이 평민인 시민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성문법이며 구체적인 소송절차와 강제집행 절차까지 담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한다.

김진한에 따르면 로마의 12표법이 위대한 이유는 국가가 사인 간의 다툼에 공정한 판관으로 나서고,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공정하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법정을 마련했으며, 이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성문의 법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법정의 탄생이야 말로 판례의 축적으로 이어지며 법리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케 했다. 판례와 법리의 발전은 로마법 대전을 위시한 성문법전의 발전을 추동했다. 김진한은 민법 위주로 발전한 로마법의 한계도 간과하지 않는다.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에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의 성취와 한계도 담겨있다. 한비자 등의 법가가 말하는 법치는 권력자가 백성을 다스리고 규율하기 위한 것으로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다. 하지만 한비자 등의 법가는 권력자를 위한 법치라고 해도 적용에 일관성이 있는 건 중요하다고 봤다. 윤석열 정부가 새길만한 대목이다.

김진한은 ‘법에 의한 지배’ 혹은 형식적 법치주의의 극단이자 최악의 사례로 히틀러 나치에 부역했던 법률가들을 든다. 김진한이 이해하는 법치주의는 협애한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니며 더 나은 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형사와 민사의 세계는 다르다

김진한은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에서 형사와 민사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쉽게 보여준다. 김진한에 따르면 민사의 세계는 사적자치(민법)와 변론주의(민사소송)이 지배하는 세계다. 사인 간의 계약 등에 국가는 개입하지 않으며, 사인 간의 재판에도 공정한 판관 역할만 수행할 뿐이다.

반면 형사의 세계는 죄형법정주의(형법)와 위법수집증거배제(형사소송)가 다스리는 세상이다. 형사의 세상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를 대신해 국가형벌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데, 국가의 형벌권 행사는 개인의 기본권을 최대로 침해하는 것이라서 헌법과 법률의 엄격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통제되지 않는 국가형벌권 행사가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지난 몇년간 신물나게 경험하고 있다.
큰사진보기 ▲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표지 사진 ⓒ 지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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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에서 가장 강조하는 개념은 형량과 과잉금지원칙이다. 형량(衡量)은 여러 옳은 당위와 가치를 저울질해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는 작업쯤 될 것이다. 김진한은 이 형량이 법을 만드는 국회, 법의 집행을 책임진 대통령 및 행정부, 법의 해석을 맡은 사법부 모두에게 긴절한, 즉 절실한 과제로 본다.

특히 극단적 정파주의와 진영논리에 매몰된 대한민국에게 형량의 중요성과 긴절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형량과 과잉금지로 수렴된다

형량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원칙이 ‘과잉금지원칙’이다. 김진한은 ‘과잉금지원칙’을 여러 각도에서 빛을 비추는 여러 단계의 판단으로 비유한다. ‘과잉금지원칙’은 1. 권력행사의 목적이 정당한가? 2. 수단은 적절한가? 3. 최소침해성의 원칙을 지켰는가? 4. 달성되는 공익과 침해되는 이익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등의 4단계로 구성된다.

굳이 김진한에 따르지 않더라도 결국 현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형량과 과잉금지원칙으로 수렴될 수 밖에 없다. 인류는 그 보다 더 나은 원칙과 기준과 방법론을 찾지 못했다.

김진한은 실정법 체계의 최고규범인 헌법이 현실에서, 특히 입법, 행정, 사법 등의 권력기관 내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걸 한탄한다. 김진한은 헌법에 의해 권력기관이 통제되고 주권자의 기본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길 강력히 소망하지만, 개헌이 모든 걸 해결할 것이란 환상은 갖지 않는다. 헌법재판이건, 개헌이건 이를 현실 속에서 관철시키고 유지시킬 힘은 오로지 주권자의 의지와 역량이란 사실을 김진한은 놓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한이 ‘헌법개정시 반영해야 할 여섯가지 사항’을 책에 담은 건 주목된다. 대통령의 중임허용, 대통령 선거의 결선 투표제 도입,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기 및 정년연장,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허용, 감사원의 독립성 보장,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 보장이 그것이다. 참고할 부분이 많다.

나는 김진한이<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를 통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주권자가 법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살아가야 하며, 그렇게 살 수 있다’라고 읽었다.

민주주의는 결국 ‘인민의 자기지배’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주권자만이 법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 시민은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의 신하로 살 수 밖에 없다.